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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

실습 첫 주.


첫 주는 산부인과 파견이었다.
산과, 부인과로 나누어져 있지 않은 병원이었고 나 혼자 파견을 갔기에 정말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수술복을 처음 입어보았다.
그동안 망각하고 있었던 aseptic technique의 중요성을 다시 마음 속에 새기게 되었다.

수술장에 들어가기 전 환자분의 인자한 미소를 보았다.
그 옆에서 참았던 눈물을 흘리던 가족들의 얼굴도 보았다.
마취가 풀린 후 고통스러워하시는 환자분의 모습에 함께 안타까워했다.

수술하여 나온 엄청나게 큰 종양을 보았다.
처음 본 순간 정말 충격적이어서 난 그대로 굳어 버렸다.

2년 후 겪을 인턴의 생활을 간접적으로 체험해보았다.
IV line 잡는 것을 두려워하는 환자분의 모습을 보았다.
내가 line 잡히는 것 두렵지 않다고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함께 설명을 듣고 싶어 하시는 환자분의 모습을 보았다.
내가 환자였더라도 필시 그럴 것이다.

Suture cutting을 해보았다.
부위 별로 다른 길이로 잘라야 하는 것을 전날 배웠는데 다음날 아무 생각 없이 자르려 하다가 선생님께 한 소리 들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할 것 같다.

좁지만 아늑한 의사 당직실에서 하룻밤을 보내보았다.
별로 하는 것 없이도 힘든 스크럽을 선 후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으며 한숨을 크게 쉬어 보았다.
서로 다른 직종 간의 미묘한 입장 차이를 지켜보았다.

실제 환자분과 면담을 해보았다.
환자분께서 너무 대답을 잘 해주셔서 감사했다. 
그러나 아직 난 한참 멀고도 더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한된 학생의 신분으로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것이 답답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갓 세상에 나와서 힘차게 우는 아기의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다.
수술이 길어지자 고통스러워하는 환자의 모습을 보았다.

너무 일찍 엄마 뱃속에서 나온 탓에 인큐베이터에 있던 아기,
검사하려고 인턴 선생님이 채혈할 때 intubation 때문에 울음소리도 제대로 못내고 얼굴이 파래지도록 우는 모습이 정말 안쓰러웠다. 
한 손으로 반대편 다리를 젖혀 선생님을 도와드리며 살짝 새끼손가락을 뻗어 아기 손을 잡아주었다. 
애기야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자라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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