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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2016 여름

[2016 이탈리아여행][04]미켈란젤로 광장의 노을

20160808

여행 넷째 날

이탈리아, 피렌체



오후까지 어제 못한 시내 구경을 마저 하고 저녁으로 티본 스테이크를 맛본 후 미켈란젤로 광장에 올라가서 석양과 야경을 볼 계획을 수립했다. 

먼저 쿠폴라에 올라갈 생각이었는데, 미리 입장 시간을 예약할 수도 있었지만 시간이 없고 귀찮아서 하지 않았다. 

8시 30분부터 입장이라고 들었고, 아침을 먹고 쿠폴라 대기 줄에 도착한 시간은 9시 정도..



ㅋㅋ 나보다 조금씩 덜 게으른 사람들이 이미 두오모를 빙 돌아 엄청 길게 줄을 서 있다.



한참 기다린 후, 여기서부터 1시간 30분 남았다는 표지판이 보였다. 

입장하는 입구까지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 보여서 오버해서 써놓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얼추 비슷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2시간 넘게 줄을 서 있었으나 아직도 기다리는 중 ㅋㅋ

오늘은 평일이어서 두오모 내부 입장을 기다리는 줄과 섞여서 더 많아 보인다. 



드디어 입구가 눈 앞!

극성수기답게 9시에 줄을 섰는데 12시가 조금 넘어서 입장할 수 있었다. 

조금 더 일찍 오거나 예약을 하고 왔으면 조금 덜 기다렸을테지만 줄 서서 오래 기다린 것에 크게 불만은 없었다. 



두오모 내부까지 줄을 또 서서 들어가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고, 쿠폴라로 오르는 계단 입구에 서서 천장화를 구경했다. 

가톨릭, 개신교를 믿지 않고 성경도 진득하게 읽은 적이 없어서 벽화에 담긴 자세한 이야기는 모르나 위로 멀리 올려다보는 시선 끝에 천국을 묘사하여, 방문하는 신자들의 신앙심을 고취시켰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쿠폴라로 올라가는 계단, 어제 올라갔던 조토의 종탑과 달리 중간에 쉬어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 



몇 계단이나 올라갔는지. 쿠폴라 꼭대기로 이어지는 계단에 가기 전에는 이렇게 천장화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아래에서 본 것처럼 고개를 들어 꼭대기를 바라보면, 아까 보았던 천장화가 조금 더 자세히 보인다. 



그런데 1층에서 볼 때는 고개를 꺾어서 멀리 있는 천장화를 보게 되므로 꼭대기 쪽의 중심 부분 위주로 보였던 것과 달리,

이곳에서 천장화를 볼 때에는 테라스의 높이가 어느 정도 있어서 그런지 그림의 아래쪽, 지옥과 악마를 묘사한 부분이 더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천장화를 그리던 시대에 이곳을 오르내리던 사람들은 대부분 사제들이었을텐데, 일반 신자들에게는 멀리 있는 천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사제들에게는 가까이에 있는 지옥의 모습을 보여준 것에는 무슨 의미가 담겨 있었을까?



쿠폴라의 곡면을 따라 몸을 기이한 자세로 굽혀야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을 얼마간 더 올라가니, 어제 본 피렌체의 풍경이 눈 앞에 다시 나타난다. 언제 봐도 아름다운 벽돌색 지붕들.

쿠폴라가 종탑보다 조금 높지만 보이는 풍경은 비슷했다. 



어제 종탑에서 쿠폴라가 예쁘게 보였듯이 여기서는 온통 벽돌색 건물인 가운데 홀로 우뚝 솟아 있는 종탑을 구경할 수 있다. 



위에서 피렌체의 경치를 천천히 감상하고, 그늘진 의자에 앉아 바람에 땀도 좀 식힌 후 천천히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이곳에 다시 오르더라도 벽돌색 피렌체는 같은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겠지?ㅋㅋ



아무도 모르는 곳에 둘만의 자물쇠를 걸어놨군!



다시봐도 엄청 크고 예쁜 두오모, 내부에 들어가보는 것은 포기!

점심을 먹기는 해야겠는데 시간이 애매하다. 

어제는 늦은 시간에 점심을 너무 많이 먹어서 저녁을 먹기 곤란했다. 

그래서 오늘 점심은 간단히 해결하기로 했다. 




광장 근처에 이것저것 파는 식당이 많았다. 

그 중 진열한 파니니와 피자가 먹음직스러워 보이던 곳을 골라 들어가서 토마토 샌드위치를 먹었다. 

뽀모도로가 토마토라는 뜻이었구만!


점심을 먹은 후에는 두오모 앞에 있던 세례당에 들어갔다. 



두오모와 달리 르네상스 이전 양식으로 그려진 천장화



세례당 내부에 여러 개의 전등이 달려 있었는데, 전등이 없던 시기에는 내부가 많이 어두웠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도 등불같은 것을 안에다 달아뒀으려나?

나중에 로마에서 바티칸 투어할 때 중세 성경을 묘사한 회화에 금색이 많이 사용된 것은 성당 내부가 어두워서 최대한 밝게 보이도록 하려는 의도였다는 설명을 들었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곳이 생각나기도 했다. 

또 저기 보이는 2층 복도로 올라갈 수 있는지도 궁금했다. 계단이 어디에 숨어 있으려나? ㅋㅋ



여기도 바닥에는 지옥과 악마의 모습을 묘사해뒀는데, 르네상스 양식보다 더 그로테스크해서 어찌 보면 이게 더 무서워 보인다.. 



세례당의 동쪽 문, 15세기에 피렌체 칼리말라 길드의 공모전으로 기베르티라는 조각가가 만든 이 문은 구약성서의 내용을 청동 부조로 제작한 후 도금한 것인데, 미켈란젤로가 이걸 보고 "천국의 문"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두오모에서 밖으로 나오면 정면에 이 문을 볼 수 있다. 


세례당을 본 후에는 두오모 박물관에 들어갔다. 



도나텔로의 막달라 마리아. 

닌자거북이를 보고 자란 세대로서 레오나르도,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도나텔로의 거북이 이름들은 잊을 수가 없지만

그 중 도나텔로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는 나머지 셋에 비해 잘 몰랐고 지금도 잘 모른다. 

하지만 앞으로는 적어도 도나텔로하면 이 작품을 떠올릴 수는 있을 것 같다. 



집 근처 박물관에서 훌륭한 예술 작품을 모작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언제 봐도 신기하다. 



박물관에서 앉아서 쉬기도 하고 느긋하게 구경하며 2시간 정도를 흘려보낸 후, 젤라또를 먹으러 왔다. 

어제 갔던 Perche no와 한 블럭 떨어져 있는 Festival



수박, 멜론 맛을 골랐는데 둘 다 훌륭한 맛이었다. 

피렌체 젤라또가 참 괜찮은 것 같다.



시뇨리아 광장에서 아르노 강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우피치 미술관이 나온다. 

그런데 월요일이라 휴관일이다.

휴관일을 미리 알아봤으면 어제 갈 수도 있었는데 하는 생각에 조금 아쉽긴 했지만 뭐 어쩔 수 없다 ㅋㅋ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을 때에는 여기 언제 다시 와보나, 하는 생각이 앞섰는지 이와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실망감이 컸는데 이제 그렇지는 않다.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보려고 하면 쫓기듯 다니게 되고 너무 피곤하다! 

이번에 못 보면 언젠가 다시 와서 구경하면 되지뭐 ㅋㅋ


우피치 미술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산타 크로체 광장이 있어 찾아가보기로 했다. 



여긴 유럽의 어느 거리라기보다는 사진에서 본 중동같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산타 크로체 성당과 광장이 나온다.



성당 앞에는 피렌체 출신 단테의 석상이 서 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깔린 돌들이 석관이라고 한다. 피렌체의 유명 인사들이 이곳에 많이 묻혀 있다고..



도나텔로와 로시니, 마키아벨리, 갈릴레이, 그리고 유골은 없이 비어 있다는 단테의 석관까지

저 배치도가 없었으면 찾아보는 것이 조금 어려웠을 것 같다. 

예과 2학년 때 교양 수업으로 이탈리아어를 들을까 생각했다가 관둔 적이 있는데, 그때 들었다면 조금 편했을까?ㅋㅋ



다른 성당에서 흔히 보지 못한 빛바랜 벽화도 인상적이었다. 



예전에 스페인에서 먹어본 아모리노!

젤라또 먹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번에는 그냥 지나쳤다. 


잠시 숙소에 들렀다가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티본 스테이크는 혼자 먹기가 다소 어려울 수 있을 것 같아 동행을 구했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 바로 옆에 있는 달오스테에 3명이 들어가서 버섯 파스타와 티본 스테이크 1kg을 주문해서 먹었다. 

워낙 잘 알려진 가게라서 그런지 한국 분들이 많았다. 

이전에 밀라노에서 먹어본 것만큼 맛있었다!


이틀째이지만 피렌체에서의 마지막 저녁, 이제 미켈란젤로 광장에 가서 피렌체의 노을과 야경을 구경할거다. 



아르노 강변을 따라 걸어서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가는 길. 

멀리 보이는 폰테 베키오 뒤로 해가 벌써 지고 있었다. 



언덕에 위치한 미켈란젤로 광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피렌체의 일몰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렌지 빛으로 물든 하늘, 어렸을 때에는 저 색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너무 좋아한다. 

5년 전 혼자 유럽을 여행할 때 프라하의 비셰흐라드에서 블타바 강 너머로 해가 저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정말 아름답게, 내 기억 속에 필름처럼 또렷하게 남아 있는 장면 중 하나인데, 

그때 비셰흐라드 대신 이곳에 있었다면 지금 보고 있는 미켈란젤로 광장의 석양을 훨씬 더 아름답게 기억했겠지.



어두워지면서 강 너머 시내에는 조명이 들어온다. 

피렌체의 야경은 불타는 듯한 노을만큼 강렬하지는 않지만 은근한 두오모의 불빛과 저 멀리서 잔잔히 흔들리는 조명들이 어우러져 편안한 느낌을 준다. 



광장에서 내려와 다시 아르노 강을 따라 걸었다. 

물이 맑지 못한 강의 모습은 항상 밤에 더 아름답다.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폰테 베키오도 비춰주다니, 낮에 강물을 봤다면 상상하기 힘들 장면이다!


머무는 이틀 동안 약간은 외로웠던 피렌체, 기분 나쁜 외로움은 아니어서 조금 더 깊어져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스마트폰 때문에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면 스마트폰 없이 돌아다녔던 것이 불과 5년 전일 뿐인데. 

"내가 옛날에 처음 유럽 여행 왔을 때는 스마트폰도 없어서 다들 종이 지도 보고 공중 전화로 국제 전화하고 그랬어~ 카톡도 없으니 동행하기로 했는데 시간, 장소 정해두고 엇갈리면 아쉽지만 그냥 끝이었어 ㅠㅠ

아빠가 어린 아들에게 신기할 법한 20-30년 전 옛날 얘기를 할 때나 어울릴 저런 이야기가 겨우 5년 사이로 성립한다니.. 세상이 점점 빠르게 변하긴 하는구나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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