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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2016 여름

[2016 이탈리아여행][05]나폴리를 보고 죽어라(Vedi Napoli e poi muori)

20160809

여행 다섯째 날

이탈리아, 나폴리



피렌체의 여운을 뒤로 하고 이제 나폴리로 간다. 

처음에는 로마에서 출발하는 남부 투어 상품을 이용할까 했다. 

그런데 투어는 일정이 너무 빠듯해서 느긋하게 내가 좋아하는 피자 먹을 시간도 없을 것 같고 이도저도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아말피 해안과 카프리 섬 중 아말피 해안을 포기하고, 나폴리에 2박을 하며 내 맘대로 다니기로 했다. 

나폴리를 비롯한 이탈리아 남부의 치안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는 워낙 많이 들리므로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으나, 그보다는 기대가 더 컸다. 



피렌체에서 나폴리까지 가는 기차도 Loco2에서 미리 예매를 했는데, 알고보니 좌석이 Italo 열차의 일등석이었다. 

예매할 때에는 가격이 다른 구간이랑 비슷해서 전혀 몰랐는데 ㅋㅋ 일찍 예매하는 것이 좋긴 한가보다. 

덕분에 넓은 의자에 앉아 편안한 3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중간중간에 기내식 주듯 음료수와 과자도 준다!


약 3시간 가량을 달려 나폴리 중앙역에 도착했다. 

플랫폼에서 가리발디 광장으로 나오는 길, 역 바닥에 어떤 아저씨가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누워 있고, 

그 주변으로 경찰을 포함한 몇몇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 

의식은 또렷하게 있었고 술 먹고 넘어진 것 아니면 누구한테 두드려 맞은 것 둘 중 하나였겠지..

어느 쪽이라도 나폴리가 참 만만치 않은 곳이라는 인상을 풍기기에는 충분했다.



나폴리 중앙역에서는 핸드폰도 꺼내지 말라는 둥 워낙 안 좋고 흉흉한 이야기들이 많이 떠돌아 다닌다. 

방금 전 피를 보고 나온지라 살짝 경계심을 갖기는 했는데, 별 일은 없었다. 

길거리에 순찰 나온 경찰은 시가를 피우고, 난폭하기로 유명한 나폴리의 운전수들은 빨간불인데도 연신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려댔다. 

이쯤 되니 오히려 뭐 이런데가 다 있어! 하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당혹스러움에 익숙해지자 나폴리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숙소는 중앙역 근처의 우나 호텔로 잡았다. 

더블룸을 혼자 쓰는 방으로 예약했는데, 침대도 크고 공간도 매우 넓어서 만족스러웠다. 

호텔 직원들도 영어를 잘 하고 아주 친절했다. 

짐을 놓고 조금 휴식을 취하면서 호텔에서 준 나폴리 지도에 오늘 구경할 곳을 표시했다. 

그리고는 정작 지도를 방에 두고 나왔다. ㅋㅋㅋ

할 수 없이 구글맵을 켜고 나폴리 거리로 나왔다. 



베네치아와 피렌체에서보다 한층 더 강렬하게 느껴지는 햇빛, 조금 더 정리되지 못한 느낌의 거리. 

하지만 묘한 매력이 있다. 날씨도 좋고 거리도 매력있고, 이때부터 괜히 바보처럼 혼자 피식피식 웃고 다녔다. 


시간이 2시 경이었으므로 점심을 먼저 먹고자 하였다. 

결국 실천하지는 못했으나, 나폴리에 있는 동안에는 점심, 저녁, 그 다음 날 저녁 세 끼를 모두 피자로 먹을 계획이었다. 

다 미켈레, 디 마테오, 소르빌로 등의 피자 가게가 유명하여, 한 번씩 먹어보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ㅋㅋ


숙소에서 가까이에 있었던 다 미켈레를 먼저 찾아가봤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할 수 없이 조금 걸어서 디 마테오를 찾아가봤더니 줄이 너무 길다. 

꼭 맛집이라고 소문난 곳이 아니더라도 이곳의 피자는 기본적으로 다 맛있을 것 같았고, 주변에 있던 피자 가게 아무데나 들어간 것이 Dal presidente였다. 



내부에 기네스북 등재 기록이 있었다. 

가장 많은 사람이 피자 도우를 토스한 기록???



마르게리따 피자를 주문했다.

4유로밖에 하지 않는 놀라운 가격,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크기였다. 

베네치아에서 먹은 피자는 그래도 혼자 먹을만한 크기였는데, 이건 나오자마자 이거 어떻게 혼자 다 먹나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맛은 좋았다. 특히 도우의 쫄깃쫄깃함이 다른 지역의 피자와 엄청 차이가 났다. 

결국 스스로에게 피자 고문을 하며 다 먹기는 했는데, 이걸 다 먹은게 추후 장염에 걸려 2박 3일간 설사를 하게 된 원인이 된 것 같다.. ㅋㅋ


어쨌든 이거 먹을 때까지는 장염에 걸릴지 몰랐으므로 맛있게 먹고 일어섰다. 

피자를 가져다준 식당 직원 아주머니의 이탈리아어 발음이 멋지게 들렸다. 

정확히 묘사하지는 못하겠는데 엄청나게 쿨하고 당당한 느낌, 매력적이었다. 



목구멍 바로 밑까지 피자로 채워진 듯한 포만감과 함께 다시 거리로 나섰다. 

좁은 골목길이 많아 보였다.



기념품 가게, 식료품 가게, 피자 가게 등으로 채워진 좁은 골목을 빠져나와 카스텔 누오보 쪽으로 이동했다. 

중간에 밟으면 꽥 소리나는 닭 인형의 돼지, 오리 버전을 밟아가며 우쿨렐레를 연주하던 할아버지 덕에 또 한바탕 웃었다. 



안 지키고 넘어다닐거면 중앙선은 왜 그어놨냐 ㅋㅋㅋㅋ

보행자들도 빨간 불에 건너는 것은 기본, 그런데 보행자가 지나가면 차나 오토바이가 멈추는 것은 여기도 마찬가지다. 

운전에 있어서만큼은 매우 무질서한 곳,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운전자들이 그 무질서를 공유하고 있기에 질서가 유지되는 것 같다. 



항구를 등지고 있는 카스텔 누오보, 이렇게 생긴 성은 처음 봤다. 

체스 말 중 "룩"이 실제로는 이런 모습이었겠지. 



입구에 붙어 있던 개선문.



성 내부는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리고 항구 쪽으로 난 테라스에서 바라본 나폴리 항의 모습!

멀리 베수비오 산도 보이고 베네치아에서 봤던 크루즈선도 정박하고 있다. 



들어간 김에 미술 작품들을 천천히 구경하고 나왔다. 

어느 방향에서 봐도 참 멋있게 생긴 것 같다. 



이정표를 따라 플레비시토 광장 쪽으로 이동했다. 



그러다가 광장 직전에 방향을 북쪽으로 틀어서 톨레도 거리로 들어갔다. 

쇼핑하기 좋게 상점들이 엄청 몰려 있었다. 

나는 LUSH에 가서 입욕제를 하나 샀다. 나중에 호텔가서 욕조 목욕 하려고.



입욕제를 가방에 넣고 다시 아래쪽으로, 플레비시토 광장이 나온다. 


길을 건너려 기다리고 있으면 건너편 자동차에 타고 있던 운전자가 눈 인사, 손 인사를 자주 건네온다. 

치안이 안 좋고 위험하다는 이야기만 듣고 이곳으로 더 깊숙히 들어와보지 않았다면 정말 아쉬울뻔했다. 

점점 이 도시와 이곳의 사람들이 마음에 든다. 덤으로 날씨도 좋으니 더 신난다!



멀리 보이는 산 엘모 성, 저곳에 올라가서 나폴리의 석양과 야경을 보면 그렇게 아름답다는데, 오늘 갈 수 있을까?



조금 더 해안에 가까워졌다. 

베수비오 산이 구분해주는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가 잘 어울린다. 



해안을 따라 나 있는 파르테노페 거리를 따라 걷는다. 

그 길은 카스텔 델 오보, 계란성으로 이어진다.



카스텔 누오보에 앞선 12세기에 지어졌다. 

깨지면 재앙이 닥친다는 계란이 지하에 묻혀 있다는 이야기가 담긴 이곳, 관련된 이야기들을 조금 찾아보고 왔더라면 더 재미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입장료 없이 성에 오를 수 있었다. 



사진이니까 찍었지 실제로는 햇빛이 너무 눈부셔서 똑바로 보지도 못했다. 

보고 또 봐도 예쁜 나폴리의 바다.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나폴리는 오래 전부터 미항으로 유명했나보다. 

약간의 현대 건물들이 추가됐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변함없이 배와 선원들의 쉼터가 되었을 항구가 참 아름답다. 

이곳에서 바라본 나폴리 항구의 모습이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엑셀시오르 호텔, 원래 이곳에 묵으려고 예약했다가 중앙역에서 멀고 최종 결정한 우나 호텔과 2박 비용이 2배 가량 차이가 나서 바꿨는데 옳은 선택이 아니었던 것 같다. 

해가 진 후, 부담없이 숙소 바로 앞의 파르테노페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다음 번에 나폴리에 온다면 해안 쪽으로 숙소를 잡아야겠다. 



슬슬 지평선 너머로 사라질 준비를 하면서도 여전히 강렬했던 햇빛을 받으며 성 위에서 나폴리를 한참 구경했다. 



그리고 파르테노페 거리를 다시 걸어서, 산 엘모 성에 올라갈 계획을 세웠다. 

푸니쿨라를 타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톨레도 거리로 향했다. 



중간에 그라니따를 팔길래 먹어봤다. 

난 분명히 멜론맛 달라고 했고 아저씨도 멜론맛 써있는 데에서 뽑아서 줬는데 넌 왜 오렌지맛이니?ㅋㅋ

멜론맛..이라기보다는 멜론향의 흔적은 아주 살짝 있는데, 베이스가 새콤한 맛이어서 오렌지맛처럼 느낀 것 같다. 



플레비시토 광장을 지나 다시 톨레도 거리로, 푸니쿨라 정거장을 찾아갔는데 운행을 안 하는 것처럼 보였다. 

찾아가는 중에 좁은 골목들을 종종 지났는데, 해가 지기 시작한 상태에서 그 좁은 골목으로 오토바이가 쌩쌩 달리니 조금 무섭기도 했다. 

악명만큼 위험하지 않지만, 오토바이 날치기 등도 있다고 하므로 저녁 이후로 좁은 골목은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푸니쿨라로 이동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차선으로 지하철을 선택했다. 



가장 가까운 무니치피오 역가지 걸어가는 길, 여기가 움베르토 1세 갤러리아인가보다. 

밀라노의 비토리아 엠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무니치피오 역에 도착해서 지하철 티켓도 뽑았다. 

지하로 꽤나 내려가야 플랫폼이 나온다.



누군가 나폴리의 지하철이 엄청 더럽고 난폭하다는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부다페스트에 비하면 그래도 양반이었다.



그런데 왜 지하철 창문은 죄다 열어두는거니..??

Vanvitelli 역에서 내렸다. 



언덕 길을 조금 올라가니 주택가가 나왔고, 조금 더 들어가니 산 엘모 성이 보였다.



보이긴 하는데, 이미 문을 닫은 시간. ㅠ

해가 지려면 아직 시간이 좀 남았는데 벌써 문을 닫아서 아쉬웠다. 

나중에 야경을 잘 보려면 겨울에 와봐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산 엘모 성 아래쪽으로 작은 광장이 하나 있었는데, 그 광장에서도 나폴리 시내의 모습이 어느 정도는 보인다!



도착했을 때에는 아직 해가 완전히 지기 전이었다. 

점점 오렌지빛으로, 그리고 푸른 빛으로 변하는 하늘을 구경하며 벤치에 앉았다. 

오래된 MP3 플레이어를 꺼내서 Orange Range의 키즈나를 반복해서 들었다. 

해질녘 하늘을 바라보며 듣기에 좋은 노래같다.



해가 지고 도시 곳곳에 조명이 밝혀졌다. 

바다가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아쉬웠지만, 이곳에서 이렇게 바라보는 야경도 참 예쁘다.

한참을 앉아서 노래도 듣고 나폴리 구경도 하고, 시간은 어느덧 9시가 되어 있었다. 

점심에 피자를 너무 배부르게 먹어서 저녁은 안 먹은 상태였고, 그래서 마트에서 과일이나 좀 사다 먹자는 생각이 들었다.  



구글맵에게 물어보니 이렇게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길이 있다고 한다. 



중간에 만난 길고양이!



어! 그런데 내려오다보니 바다도 같이 보인다!!

산 엘모 성에 올라가서 봤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렇게 나폴리의 밤바다를 보는 것도 행운인 것 같다. 



구글맵이 안내해주는 길을 따라 걸어서 Chiaia 지역까지 왔다. 

1시간 가량을 걸었다. 나폴리는 이탈리아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인데, 지도만 보고 만만하게 봤다가 생각보다 고생을 했다. ㅋㅋ



오토바이가 모여 있던 좁은 골목길, 이 시간에 여기 말고 중앙역 근처의 이런 골목을 돌아다니고 있었다면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가 아닌 "죽고 싶으면 나폴리에 가라"가 실감났을 것 같다. ㅋㅋ



결국 도착한 까르푸, 복숭아와 멜론, 음료수를 사서 나왔다. 

이곳에서 호텔까지의 거리는 6km, 지친 상태에서 걸어가기는 매우 무리였고,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다가 마침 택시가 한 대 오길래 잡아서 탔다. 

택시도 나폴리의 자동차, 있는 속도 없는 속도 다 내고 빵빵거리며 그 좁은 길을 헤치고 다니는데 무섭고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길었던, 그리고 즐거웠던 하루. 

개운한 욕조 목욕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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